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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

제정 로마 시대

by 법과일상 2023. 1. 19.

제정 로마(로마 제국)은 원수정을 시행한 옥타비아누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원수정에서의 원수의 권한은 근대 입헌군주제하의 원수보다 훨씬 강대하여 거의 황제나 다름없는 권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입니다. 300여 년 이상 팍스로마나 절정기 시대를 이끈 제정 로마시대와 관련한 사실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였습니다.

 

 

제정 로마시대 와 5현제

아우구스투스(존엄자)는 기원전 27년에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에서 부여받은 칭호입니다. 특별한 권한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으로부터 집정관과 호민관의 직권과 명령권을 부여받아 공화정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로마 최고의 정치, 군사적 권한을 행사하게 합니다. 본래는 존엄한 자를 의미하는 호칭에 불과했으나 이후 역대 로마 황제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원수정은 옥타비아누스가 확립한 로마의 정치제도입니다. 공화정의 여러 기관(원로원, 평민회 등)에서 각종 권한을 부여받아 공화정이 전통 위에서 합법적으로 개인 지배를 확립했습니다.

 

네로는(37년 ~ 68년) 제정 로마의 5대 황제입니다. 초기에는 선정을 베툴었으나 차츰 독재정치로 기울어 폭군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대화재를 기독교도의 책임으로 몰아 박해하였으며 뒤이어 일어난 반란으로 피신했다가 사망합니다.

 

5 현제는 로마제국의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이우스 안토니누스의 다섯 황제를 말합니다. 로마제국은 5현제 시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네르바는(30년 ~ 98년) 제정 로마의 12대 황제입니다. 서민출신으로 원로원 의원에서 황제가 되었습니다. 원로원과 협력하여 질서 회복을 꾀했으며 빈곤 시민의 자녀들을 구제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트라야누스는 (53년 ~ 117년) 제정 로마의 13대 황제 입니다. 다뉴브강 너머의 다키아를 합병했으며 파르티아를 쳐부수고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는 등 로마 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넓혔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76년 ~ 138년) 제정 로마의 14대 황제입니다. 적극적인 대외 확장책을 거두고 브리타니아와 게르마니아에 장성을 구축하는 등 변경을 굳건히 했습니다. 학문과 예술을 장려했습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86년 ~ 161년) 제정 로마의 15대 황제입니다. 재정 개혁을 단행하고 빈민 구제 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원로원으로부터 피우스(자비로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는(121년 ~ 180년) 제정 로마의 16대 황제 입니다. 학문과 예술을 애호했습니다. 중국과도 교류하여 후한서에 대진왕안돈 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으며 명상록을 남겼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군인 황제 시대는 (235년 ~ 284년) 원수정 말기의 혼란기에 제국 각지에 주둔하던 군대가 저마다 황제를 추대하여 패권을 다툰 시대입니다. 26명의 황제가 있었으며 그중 24인이 암살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원로원이 무력으로 진압되는 등 무질서가 이어진 시대입니다. 북방으로부터는 게르만인, 동방으로부터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침입하여 제국을 압박했습니다. 전제군주정을 확립한 디오크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통일과 질서가 회복되었습니다.

 

콜로누스는 로마의 자영농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원수정 말기에는 토지에 묶인 소작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팍스로마나가 이어지면서 노예 공급이 감소하고 대농장 경영이 어려워지자 몰락 한 자유농민이나 해방노예에게 소작을 시키는 일이 널리 행해졌습니다. 인격적 자유는 인정되었으나 신분은 노예에 가까웠습니다. 중세 농노의 전신으로 일컬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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