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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

십자군 운동

by 법과일상 2022. 12. 9.

십자군은 1096년 ~ 1270년 이슬람의 점령하의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목적으로 조직된 크리스트교도의 원정군입니다. 병사들이 십자표시를 붙여 십자군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성유물 숭배나 성지 순례 등의 종교적 열정이 고조되고 있었던 데다 거기에 기사들의 모험심과 영토에 대한 야망, 상인들의 영리 욕 등이 결합되어 십자군이 출범했습니다. 십자군 운동과 관련된 사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였습니다.

 

 

십자군 운동

셀주크투르크는 투르크계 유목민 셀주크족이 세운 왕조입니다. 이집트에서 소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정복 했으며 비잔틴 제국과 교전하여 십자군 원정의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에 잇는 유태교, 크리스트교의 성지로 크리스트교의 확대와 더불어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7세기에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간 뒤 11세기 말부터 십자군의 성지 탈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클레르몽 종교회의는 십자군 원정을 결정한 종교회의입니다. 셀주크투르크의 공격을 받은 비잔틴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원조를 요청하자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프랑스 중부의 클레르몽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성지 회복을 호소했습니다. 회의에서 원정군의 출발 기일을 1086년 여름으로 정했으며 그해 농민들의 불규칙한 집단이 5회에 걸쳐 출발했으나 모두 도중에 전멸하였습니다.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종교회의에서 이슬람으로부터의 예루살렘 탈환을 호소한 로마 교황입니다.

 

제1차 십자군은 (1096년 ~ 1099년) 클레르몽 종교회의의 결의에 따라 프랑스의 제후, 기사를 중심으로 총 3만 5000명이 결집하여 원정을 떠났습니다.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점령지에 예루살렘 왕국과 에데사 백작령 등을 세웠습니다.

 

예루살렘 왕국은 (1099년 ~ 1187년) 제1차 십자군이 팔레스타인 지방에 건설한 크리스트교 국가입니다.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 남은 십자군 병사들에게 봉토를 주는 등 서구의 봉건제를 그대로 채용했습니다. 주변의 이슬람 지방 영주들과 교전을 계속하다 아유브 조의 칼리프 살라딘에게 멸망하였습니다.

 

 

제2차 십자군은 (1147년 ~ 1149년) 신성 로마 황제 콘라트 3세와 프랑스 왕 루이 7세가 주도한 십자군입니다. 에데사 백작령 함락에 대한 크리스트 교도 측의 반격으로 일어났으나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제3차 십자군은 (1189년 ~ 1192년) 살라딘의 예루살렘 점령에 따라 조직된 십자군입니다.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 프랑스의 필리프 2세, 영국의 리처드 1세가 주도하였습니다. 아콘을 포위하여 격전 끝에 함락시켰습니다. 리처드1세가 계속 남하했으나 살라딘과 휴전 협정을 맺고 전쟁을 종결합니다.

 

아콘은 십자군 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의 크리스트교도의 최후 거점입니다. 1291년에 함락되었습니다.

 

제4차 십자군은 (1202년 ~ 120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제창하고 베네치아 상인들의 후원에 의해 결성되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내분에 간섭하여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라틴제국을 성립시켰습니다. 

 

제5차 십자군은 (1219년 ~ 1221) 아콘 국왕의 이집트 원정으로 개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싸움이 유리하게 전개되었으나 이집트군의 반격으로 실패로 끝납니다.

 

제6차 십자군은 (1248년 ~ 1254년)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이집트에 침공했으나 전염병을 만나 실패합니다.

 

제7차 십자군은 1270년에 루이 9세가 북아프리카 북안 튀니지에 상륙하여 이슬람군과 충돌한 사건입니다. 사실상 최후의 십자군으로써 1270년 8월 루이 9세가 페스트로 병사한 뒤 퇴각하면서 실패로 끝이 납니다.

 

요한 기사단은 종교 기사단으로 제1차 십자군 때 결성되어 부상병 치료를 담당했습니다. 검은 천에 백십자가 새겨진 옷을 입었으며 이슬람교도와의 전투에도 참가하였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후에는 키프로스 섬, 로도스섬, 몰타섬으로 옮겨갔습니다. 유럽 각지에 기사단령을 소유했으며 막대한 재산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템플 기사단은 1119년에 결성된 종교 기사단입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 성당 수비가 목적이었으나 후일 키프로스 섬으로 옮겨간 후에는 영국, 프랑스에 영지를 소유하기도 했으며 금융업도 행했습니다.

 

독일 기사단은 제3차 십자군 당시 성지 경호를 위해 창설된 종교 기사단입니다. 흰 바탕에 흑십자가 새겨진 의복을 착용했습니다. 13세기 이후에는 헝가리, 폴란드에 진출하여 독일 기사단령을 형성하며 영방주권을 확립합니다. 후일 독일인 동방 식민의 중심적 존재가 되어 프로이센 왕국의 기반을 형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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