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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

그리스 중장보병 과 그리스 팔랑크스 간단 설명

by 법과일상 2023. 1. 15.

 

그리스 중장보병과 팔랑크스 전술은 고대 그리스 시기 전장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그리스 시대 중장보병이 되기 위해서는 무기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재산이 있는 유산계급의 시민이어야 했습니다. 또한 중장보병의 무거운 장비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훈련이 필요했고 팔랑크스 전술을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쳐야 했습니다. 당대의 정예군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던 그리스 중장보병과 팔랑크스 전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 중장보병
그리스 중장보병

 

1. 그리스 중장보병

 

 

중장보병의 흉갑은 근육을 도드라지게 만든 청동제 흉갑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비용의 문제로 가장 통상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여러 겹의 아마포로 만들어진 흉갑이었으며 주로 금속 판 또는 비늘 모양의 금속조각으로 보강되었습니다. 

 

방패(호프론)는 무기는 대략 18파운드(약 8킬로그램), 직경 약 3피트(1미터)의 오목한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청동으로 보강하거나 장식을 붙ㅇ린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중세의 문장에 비교할만한 어떤 문양의 새겨져 있었습니다. 방패의 안쪽 오목한 표면에는 두 개의 받침대가 있어서 그중 하나에는 팔꿈치를 집어넣고 다른 하나는 손으로 움켜쥐었습니다. 

 

투구는 청동투구였습니다. 이른바 코린트식 투구로 알려져 있으며 전투가 없을때는 투구를 머리 뒤로 젖혀 얼굴을 드러낼 수 있었고 전투 시 앞으로 잡아당겨질 수 있어서 얼굴을 가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보이게 하는 틈새와 코와 입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고려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투구 위에는 보통 세로방향으로 초승달 모양의 말총 깃털이 자주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다리보호대는 중장보병의 방패가 무릎 아래까지는 보호해주지 못했으므로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주로 청동제 정강이받이가 다리보호대 역할을 했습니다. 

 

중장보병의 창은 길이가 약 9피트(3미터)가량 이었습니다. 투척용이 아니라 찌르기를 위해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보조무장으로 베고 찌르는 용도의 단검을 휴대했습니다. 

 

 

 

그리스 팔랑크스
그리스 팔랑크스

 

2. 그리스 팔랑크스

팔랑크스 전술의 전투방식은 전열을 갖춰서 한 편이 무너질 때 까지 서로 밀치는 오늘날의 럭비스크럼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습니다.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창을 들어 앞으로 내밀어 각자의 방패가 각자의 왼쪽 전우를 보호하며 밀집한 형태로 격돌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오른편의 병사는 스스로의 방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가장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병사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팔랑크스 대열은 대게 8열로 정렬했으며 각 열의 횡간은 6~8피트가 기본 대형이었습니다. 그러다 적과 격돌하기 직전에 각 열들은 밀착하여 각 병사의 간격이 3피트 정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각 병사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오른쪽 병사의 방패에 밀착하게 되므로 대열은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쏠렸습니다. 그러다 보면 전체 대열이 서서히 오른쪽으로 회전하면서 전투가 진행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채로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육박전을 형태의 전술이기에 전투 시간은 1시간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대열이 먼저 무너지는 쪽이 패배하게 되며 패배가 확실시되면 패배한 쪽은 살기 위해 무거운 장비들을 버리고 전장을 이탈하게 됩니다. 전장에서의 사상자는 대게 도망 중에 많이 발생하게 되지만 승리한 쪽은 굳이 패배한 쪽을 필사적으로 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소중한 재산이자 명예의 상징인 방패와 무기를 버린 채 도망하는 적군은 무거운 장비를 버리고 몸이 가벼운 상태로 도망하였기에 승리자 역시 장비를 버리고 뒤쫓지 않는 이상 추격이 어려웠으며 추격을 담당할만한 기병의 비율조차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긴 창과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채 밀집하여 상대를 밀어붙이는 팔랑크스 전술은 정면으로 상대하기 매우 어려운 강력한 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연성이 떨어지는 팔랑크스의 전술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군 또한 같은 팔랑크스 전술을 사용하거나 하니면 측면으로의 자유로운 기동이 제한되는 전장환경이 필수였습니다. 결국 수백 년 후 전술적 유연함을 가진 로마의 레기온에게 패배하면서 중장보병 팔랑크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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