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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

절대왕정 (절대주의)

by 법과일상 2022. 12. 4.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인한 유럽인의 각성과 봉건 사회의 해체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교황의 지배에 대한 반발로 이어저 종교 개혁운동을 일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봉건 질서의 붕괴를 틈타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던 국왕이 도시의 대상인과 손을 잡고 절대왕정을 구축하게 됩니다. 왕권신수설과 관료, 상비군과 중상주의로 무장한 절대 왕정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일해 가며 치열한 시민지 쟁탈전에 나서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며 자본주의가 새로운 경제, 사회제도로 자리잡게 되고 결국 새롭게 성장한 시민계급이 절대 왕정을 해체하면서 유럽에 근대 사회가 나타나게 됩니다. 절대왕정 (절대주의) 시기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였습니다.

 

 

절대왕정 (절대주의)

왕권신수설은 절대주의를 정당화히기 위한 이론으로 국왕의 권력은 신에게 부여받은 신성한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국왕은 신에게만 책임을 지며 왕권에 대한 인민의 반항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제임스 1세, 프랑스의 루이 14세 등이 대표적 인물입니다.

 

궁정 귀족은 중세 말기에 봉건 사회가 변동하고 왕권이 신장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지 못해 몰락해 가면서 국왕의 궁정에 기식하는 존재가 딘 귀족층을 일컫습니다. 절대 왕정기에는 고급관료, 군인으로서 궁정 정치를 담당했습니다.

 

관료는 절대주의 하에서 행정의 수족이 되어 상비군과 함께 왕권을 보좌하던 관리집단입니다. 유능하고 전문 지식을 갖춘 데다 충성스러운 그들이 있어 국왕은 넓은 국토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봉건 귀족과 상층 시민이 관료가 되었으며 당시에는 아직 왕을 위해 일하는 관료일 뿐 국민의 공복은 아니었습니다.

 

상비군은 관료와 함께 절대주의의 양대 지주로 왕권의 군사적 기반입니다. 국내의 통일과 질서유지, 방위, 외국 원정, 식민지 획득에 활약하였습니다. 임시적인 조재이던 용병과 달리 상설되어 있었으며 장교 등 상층부는 귀족들이 차지했습니다. 왕의 직속 군대로서 국민군은 아니었습니다. 

 

중상주의는 16세기 ~ 18세기 절대주의 국가의 경제정책입니다. 영국, 프랑스의 경우가 그 전형입니다. 관료와 상비군의 유지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얻기 위해 상업을 중시하고 국고수입을 늘리려 했습니다. 중금주의에서 시작하여 무역차액주의로 이행했습니다. 화폐가 많을수록 국가는 부유하다는 생각에서 화폐의 비축을 꾀하고 식민지 수탈과 국내 산업의 보호, 통제를 추진했습니다. 중상주의와 결부된 특권 대상인의 보호는 산업자본의 발달을 방해했습니다.

 

중금주의는 중상주의의 1단계로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금과 은, 화폐 그 자체를 조금이라도 더 만히 획득하려 한 정책입니다. 국내와 식민지의 금은 광산을 찾는 동시에 금은화폐의 국외 유출을 막고 외국 화폐의 유입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무역 차액 주의는 중금주의에 이어지는 단계로 수출은 장려하고 수입은 억제함으로써 무역에서의 수출 초과를 달성하여 국내에 화폐를 축적하고자 했습니다. 동인도 회사 등의 특허 무역회사가 이 정책의 중심이었습니다.

 

상업자본은 공업생산에 의해 이익을 얻는 산업자본과는 달리 상업에 의해 이익을 얻는 자본입니다. 절대주의 체제하에서 왕권과 손을 잡은 대상인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국왕으로부터 특권을 부여받고 왕국에 재정원조를 했습니다. 뒤에 산업자본으로 대체되어 갔습니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 외에 다른 생계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양식으로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경제, 사회 체제입니다. 16세기 이후 공장제 수공업으로부터 시작되어 18세기 ~ 19세기에 산업혁명을 거치며 확립됩니다.

 

부르주아지는 도시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하는 신흥 계급을 말합니다. 일부가 점차 산업자본가의 성격을 띠어 가며 자본주의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메뉴팩쳐는 (공장제 수공업) 자본가가 공장을 세우고 임금 노동자들을 모아서 분업과 협업을 통해 생산을 행하는 수공업을 말합니다. 생산수단이 간단한 도구라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었으나 분업과 협업에 의해 생산력이 증대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6세기부터 모직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경영자가 상업자본가의 지배에 대항하면서 차츰 산업자본가로 성장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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