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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

대항해시대 탐험

by 법과일상 2022. 12. 3.

대항해시대는 15세기 후반부터 유럽인의 세계 진출과 신항로 개척이 대규모 행해진 시대를 말합니다. 지리상 발견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는 발견한 유럽인의 척도에서 본 것으로 발견된 쪽의 역사와 문화, 문명을 무시한 표현인 까닭에 지금은 대항해시대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항해시대의 탐험과 관련한 여러 사실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였습니다.

 

 

대항해시대  탐험과 관련한 주요 사실들

항해왕자 엔리케는 (1394년 ~ 1460녀) 포르투갈 왕 주앙 1세의 셋째 아들입니다. 인도 항로의 개척을 목표로 아프리카 연안을 탐엄했습니다. 포르투갈 서쪽 끝의 자그레스곶에 항해 연구소 등을 설립하여 항해술과 조선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1450년 ~ 1500년) 포르투갈의 탐험가입니다. 주앙 2세의 명으로 아프리카 연안을 탐험했습니다. 아프리카 남단의 곶에 이르러 그곳을 폭풍의 곶(후일 희망봉)이라 명명했습니다. 인도 항로 개척을 하다 해난으로 사망했습니다.

 

희망봉은 아프리카 남단의 곶입니다. 1488년 디아스가 도달한 곳입니다. 폭풍의 곶이라 명명했었지만 인도 항로 개척의 희망은 이미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여 포르투갈의 주앙 2세가 희망봉으로 개명했습니다. 

 

교황 자오선(식민지 분계선)은  아조레스 제도의 영유를 둘러싸고 일어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싸움을 계기로 1493년 교황 알렉산더 67세가 중재한 것입니다. 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와 케이프 베르데 제도를 포함하여 그 동쪽은 포르투갈 령으로 하고 서쪽은 에스파냐의 세력 범위로 정했습니다. 

 

바스코 다 가마는 (1469년 ~ 1524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입니다. 1497년 마누엘 1세의 명을 받고 인도를 찾기위해 리스본에서 출항하여 이듬해 아프리카 도안에서 아랍인 이븐 마짇를 수로 안내인으로 삼아 인도양을 횡단 캘리컷에 도달합니다. 1502년 다시 캘리컷으로 가서 포르투갈의 인도 항로 독점을 확립하고 백작에 봉해졌습니다. 뒤에 인도 총독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안돼서 병사합니다.

 

 

콜럼버스는 (1446년 ~ 1506년) 제노바 출신의 에스파냐 항해가입니다. 1478년 포르투갈로 이주한 뒤 지구 구형설을 믿고 서족으로 돌아 아시아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의 원조로 1492년 산타마리아 호 등 4척의 선대를 이끌고 팔로스항을 출항, 대서양을 횡단하여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도착합니다. 이후에도 세 차례 더 중앙아메리카에 건너갔으나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의 일부라 믿었습니다. 한때 인도 총독직을 맡기도 했으나 식민지 경영에 성공하지 못하고 불우한 처지로 사망합니다.

 

서인도제도는 카리브해에 산재한 섬들의 총칭입니다. 콜럼버스가 인도에 도착했다고 오인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51년 ~ 1512년) 피렌체 출신의 항해가, 지리학자입니다. 저서인 ㅎ아해지에서 신대륙이 아시아가 아님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이름에서 아메리카라는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신대륙은 유럽인이 남북의 두 아메리카 대륙을 이미 알고 있던 유라시아 대륙과 비교하여 부른 호칭입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처음으로 아시아가 아닌 새로운 대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마젤란은 (1480년 ~ 1521년) 포르투갈의 항해가로 최초의 세계일주자입니다.  신대륙을 우회하여 아시아에 이르는 해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포르투갈에 원조를 요청했으나 실패한 뒤 1519년 에스파냐 왕의 인가를 얻어 에스파냐 탐험대를 이끌고 출발, 남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 해협을 거쳐 태평양을 횡단했습니다. 1521년 필리핀에 이르러 침략적인 행도에 저항하던 원주민에게 살해되었습니다. 탐험대의 일부가 귀환하여 세계일주를 완수했습니다. 출발 당시 5척이었던 배에 265명의 선원이었으나 에스파냐에 되돌아온 것은 배 1척과 선원 18명뿐이었습니다.

 

태평양은 마젤란이 마젤란 해협을 통과한 뒤 눈앞에 펼쳐진 대양을 보고 붙인 이름입니다. 그에 앞서 발보아가 파타마 지협을 횡단한 뒤 태평양을 남쪽 바다로 명명한 바 있으나 마젤란은 험난한 해협을 통과한 직후에 이 잔잔한 대양을 접하고는 평화로운 바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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